울산의 시간을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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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시간을 빚다

울산의 역사와 문화, 자연과 산업의 기억이 27점의 공예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울주군청 1층 로비에서 열리는 「2026 울산 역사문화 공예특별전, 5개 구·군의 숨결, 공예로 흐르다」는 울산 5개 구·군이 간직한 지역의 이야기를 목공예와 도자공예, 금속공예, 섬유공예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울산문화공예협회와 각 지회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특별전은 2026년 11월 7일까지 이어진다.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 익숙한 재료와 기법을 바탕으로 울산의 역사적 상징과 문화적 가치를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했다. 전시장에서는 한글과 병영성, 고래와 태화강, 대왕암과 슬도, 쇠부리 문화, 반구천 암각화와 언양읍성 등 지역을 대표하는 소재가 한자리에서 연결된다.

한글 정신과 병영성을 새긴 중구

중구 전시 공간은 한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힘쓴 외솔 최현배 선생의 정신과 조선 시대 군사적 요충지였던 병영성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문자와 인물, 성곽의 기억이 나무와 도자, 섬유를 비롯한 여러 재료를 통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서목 작가의 「외솔 명언집」은 나무에 외솔 최현배 선생의 명언을 새긴 서각 작품이다. 나뭇결 위에 새겨진 글자는 한글 사랑과 민족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최현배 선생의 철학을 묵직하게 전한다.

이수진 작가의 「한글의 자리」는 한글이 지닌 존엄성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순옥 작가는 최현배 선생의 두루마기를 재현해 인물의 정신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의미를 되짚었다.

임시안 작가의 「한글 자음 합」은 한글 자음의 형태를 활용한 작품이다. 합의 손잡이에 글자를 하나씩 새겨 전통 문자가 지닌 조형미와 제작 과정의 정성을 함께 드러냈다.

이윤정 작가의 「울산 경상좌도 병영성」은 조선 시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의 지휘 거점이었던 병영성을 목공예로 형상화했다. 병영성이라는 명칭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를 줄여 부른 데서 비롯됐다.

조수진 작가의 「흑백의 언어」는 한글 자음의 형태를 분해하고 다시 구성해 도자 표면에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만들었다. 최지원 작가의 「한글, 시대를 읽다」는 최현배 선생의 한글 정신을 담은 텍스타일을 활용해 한글의 아름다움과 조형적 가치를 현대 패션 디자인으로 재구성했다.

고래와 태화강을 품은 남구

남구 전시 공간에서는 울산을 상징하는 고래와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공업화가 진행된 지역의 특성과 함께 고래와 강, 생태환경을 공예의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배치됐다.

노희선 작가의 「고래의 꿈」은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고래의 모습을 통해 세상을 자유롭게 살아가자는 의미를 전한다. 바다를 누비는 고래의 형상은 울산의 지역적 상징과 작품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이어 준다.

최량 작가의 「태화강의 백로」는 태화강의 생태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백로를 표현했다. 작품 속 백로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태화강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울산의 젖줄로 불리는 태화강이 지닌 생명성을 보여준다.

대왕암과 바다를 빚은 동구

동해와 맞닿은 동구 전시 공간은 대왕암과 슬도의 풍경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바위와 바다, 등대와 전통 선박 등 해안 도시의 특징을 담은 작품들이 금속과 도자, 돌과 이끼를 통해 구체적인 형태를 얻었다.

대한민국 명장 김천국 작가의 「금속조직 디자인 No. 1 골프」는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한 금속 조직의 독특한 무늬를 골프공에 접목했다. 금속의 미세한 구조에서 발견한 형태를 일상적인 소재와 연결한 작품이다.

권윤아 작가의 「등대」는 바다와 항로를 밝히는 등대를 도자로 표현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안내하는 등대의 상징성을 바탕으로 희망과 안전의 의미를 담았다.

박옥남 작가의 「대왕암, 바다 위에 스친 바람」은 대왕암의 해안 절경을 돌과 이끼를 활용한 조형예술로 재해석했다. 대왕암에는 신라 문무왕의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 호국룡이 돼 나라를 지키고자 바위섬에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바위섬은 육지의 바위와 철교로 이어져 있다.

오정철 작가의 「금속 거북선 보석함」은 금속으로 거북선의 형태를 구현했다. 전통 선박이 지닌 역사적 상징과 보석함을 제작하는 공예의 섬세함이 한 작품 안에 담겼다.

쇠부리 전통을 잇는 북구

북구 전시 공간에서는 불과 쇠를 다뤄 온 쇠부리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철물 공예와 칠보공예 등 여러 작품이 이어진다. 지역의 산업적 뿌리와 자연, 생명의 풍경을 현대적인 공예 표현으로 옮겼다.

권은혁 작가의 「바위 소리」는 흙을 재료로 사용해 바위에서 울려 퍼지는 깊고 넓은 소리가 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형상화했다. 단단한 바위의 이미지와 흙의 성질이 작품 안에서 맞물린다.

최은화 작가의 「청조」는 쇠부리 용광로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창조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과 생명의 풍경을 공예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불과 쇠를 다루던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조명했다.

선사시대 기억을 펼친 울주군

울주군 전시 공간의 중심에는 반구천 암각화가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긴 문양과 삶의 흔적이 석공예와 금속공예, 섬유공예, 도자공예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되살아났다. 암각화뿐만 아니라 언양읍성과 처용 등 울주군과 울산의 역사문화를 다룬 작품도 함께 소개됐다.

권정옥 작가의 「비추어라, 반구대암각화」는 반구천 암각화가 오랫동안 보존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작품은 바위에 남겨진 오래된 흔적을 통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박순경 작가의 「반구천암각화큐브화병」은 암각화 문양을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병에 접목했다. 전통 문양과 현대적인 형태를 결합해 문화유산이 생활 속 공예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차인순 작가의 「반구천암각화와 자수정」은 반구천 암각화가 품은 시간의 기억을 자수정의 빛과 결합해 표현했다. 자연에서 얻은 광물과 오래된 바위의 흔적이 한 작품 안에서 어우러진다.

최인숙 작가의 「암각화 문양수 드리개」는 암각화 문양을 섬유 위에 입체적으로 수놓아 완성했다. 바위에 새겨졌던 형상은 섬세한 실의 움직임을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기우 작가의 「오래된 미래, 신들의 향연」은 오래된 바위에 남은 기억이 되살아나 신들의 축제로 이어진다는 상상력을 담았다. 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공예 작품으로 불러낸 구성이 눈길을 끈다.

이경화 작가의 「언양읍성, 역사의 순결」은 언양읍성의 성곽과 그 안에 축적된 선조들의 지혜를 공예로 표현했다. 성곽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작품의 형태와 재료로 다시 보여준다.

울산 제6호 무형문화재 벼루장인 유길훈의 「선사시대의 숨결」은 선사시대의 잔영을 공예품으로 나타냈다. 오랜 전통을 이어 온 벼루 제작과 선사시대의 역사적 상징을 결합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엄혜영 작가의 「반구대암각화 아크릴 무드등」은 암각화에 등장하는 동물 문양과 현대적인 감성 문구를 함께 담았다. 빛을 이용해 전통 문양이 생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구성했다.

정남주 작가의 「암각화와 안경집 노리개」는 암각화 문양을 색실누비 기법으로 표현했다. 안경집과 노리개의 형태를 활용해 전통 장식미와 현대적인 실용성을 결합했다.

이현희 작가의 「시간을 새긴 궤적」은 검은 편병 위에 붉은 획을 더하고, 반구천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 문양 등을 도자 작품 위에 풀어냈다. 검은 바탕과 붉은 선, 선사시대 문양이 대비를 이루며 오래된 시간을 시각화한다.

이기우 작가의 「젊은 처용량」은 정적인 처용탈을 움직임과 체험을 고려한 형태로 개량해 착용 편의성을 높였다. 관광 기념품과 상품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을 담아 공예품 활용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공예

이번 특별전은 울산의 역사와 자연, 산업적 가치를 공예라는 매개로 다시 보여주는 자리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창작 소재로 활용하고, 이를 미래세대와 공유하려는 취지가 27점의 작품에 고르게 담겼다.

중구의 한글과 병영성, 남구의 고래와 태화강, 동구의 대왕암과 바다, 북구의 쇠부리, 울주군의 반구천 암각화는 서로 다른 지역적 특성을 지닌다. 전시는 이 소재들을 한 공간에 모아 울산 5개 구·군의 역사문화가 어떻게 공예로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산업도시 울산이 품은 선사시대의 기억과 자연문화유산, 인물과 전통이 공예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나무와 흙, 금속과 섬유, 돌과 빛으로 옮겨진 문화유산은 관람객이 가까운 거리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전시 장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 군청로 1에 있는 울주군청 1층 로비다. 전시는 2026년 11월 7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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