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에 남은 충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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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에 남은 충의의 흔적

향산리에 남은 정대업 장군의 자취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에는 병자호란 당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절한 정대업 장군을 기리는 두 공간이 자리한다. 장군의 위패를 모신 표절사(表節祠)와 제향 준비 및 문중 회의에 사용된 모의재(慕義齋)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유적은 아니지만, 두 건물에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병사를 모으고 의병장으로 나선 장군의 충의가 이어지고 있다. 기와지붕과 단정한 마당,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은 차분한 분위기를 이룬다.

추앙문 안쪽의 모의재

표절사로 향하는 길에서는 기와를 얹은 작은 문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문 위에는 추앙문(追仰門)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추앙문을 지나면 정갈한 한옥과 함께 모의재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모의재는 병자호란 때 목숨을 바친 울주 상북면 향산리 출신 정대업 장군을 기억하는 재실이다. 동래정씨 문중이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1968년 2월 건립했다. 표절사의 향제를 준비하고 문중 회의와 추모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모의재 현판의 글씨는 장군의 후손인 운암 정인형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모의재라는 이름은 의로움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풀이되며, 정대업 장군의 호인 모의(慕義)와도 맞닿아 있다. 마당을 둘러싼 한옥과 기와지붕은 절제된 모습으로 장군을 추모하는 공간의 성격을 드러낸다.

병자호란에 나선 정대업 장군

정대업 장군은 1594년에 태어나 1637년에 순절했다. 교리 겸 훈련원 첨정을 지낸 정사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활쏘기에 능하고 병법에 밝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장군은 1621년 무과에 급제한 뒤 여진족의 침입이 잦았던 북방에서 수비 임무를 맡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를 모집하고 의병장을 자청했다. 이어 1637년 경기도 이천에서 벌어진 쌍령전투에서 공을 세운 뒤 전장에서 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대업 장군이 집을 떠나며 남긴 유서에는 한 번의 죽음을 아껴 나라의 위태로움을 지켜보기만 할 수 없다는 결연한 충심이 담겼다. 이는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를 앞세웠던 장군의 뜻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군은 순절한 뒤 오랜 시간이 흐른 1766년 선무랑 호조좌랑에 추증됐다. 후손들은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11년 표절사를 세우고 제향을 이어갔다.

장군의 위패를 모신 표절사

모의재 담장을 따라 골목길을 올라가면 표절사의 정문인 봉안문(奉安門)이 나타난다. 표절사는 정대업 장군의 애국 충정과 순절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사당이다.

후손들이 1811년 세운 표절사는 고종 때 훼철됐다. 이후 1908년 중창됐으며, 1966년 다시 중수돼 현재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립과 훼철, 중창과 중수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장군을 기리는 뜻은 후손과 지역사회에 계승됐다.

표절사는 3칸 규모의 봉안문과 정면 1칸, 측면 1.5칸의 본체로 구성된다. 봉안문은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나오는 동입서출 방식의 삼문 구조를 갖췄다. 본체에는 골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이 놓였고, 입구 중앙 상단에는 표절사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 내부에는 모의 동래정공 증선무랑호조좌랑부군 신위(慕義 東萊鄭公 贈宣務郞戶曹佐郞府君神位)라고 적힌 위패가 봉안돼 있다. 장군의 호와 본관, 사후 추증된 관직을 담아 정대업 장군의 신위임을 밝히고 있다.

해마다 이어지는 춘향례

표절사에서는 지금도 매년 봄 음력 3월 15일에 표절사 춘향례인 향제가 봉행된다. 울주군 관계자와 지역 유림, 동래정씨 문중 후손들이 함께 모여 정대업 장군의 넋을 기리고 제향을 올린다.

한 인물의 공적을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정해진 날마다 예를 갖춰 추모한다는 점에서 춘향례의 의미가 분명하다. 표절사와 모의재는 건축물인 동시에 장군의 충절을 기억하고 그 뜻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능산마을 산기슭의 묘소

표절사에서 상북중학교 방향으로 이동하면 능산마을 산기슭에 정대업 장군의 묘소가 있다. 장군은 부인 밀양박씨와 함께 묻혀 있다. 모의재와 표절사, 묘소가 향산리 일대에 자리하면서 장군의 생애와 순절, 사후 추모의 흐름을 한 지역 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향산리에 남은 유적은 거대한 건물이나 화려한 관광시설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단정한 재실과 사당, 산기슭의 묘소가 병자호란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한 장군의 절개를 조용히 전한다. 표절사와 모의재는 울주 지역에 남은 충의의 역사이자 정대업 장군을 기억하는 문화유산이다.

장소 정보

장소위치
표절사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다개로 65-4
모의재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리
정대업 장군 묘소울주군 상북면 능산마을 산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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