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 약속다방의 기억

항구 들머리에 남은 다방의 기억
울산 동구 방어진항에는 지금도 10여 곳이 넘는 다방이 영업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전통 다방이 줄어드는 흐름 속에서도 방어진항 주변에서는 다방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항구의 일상과 뱃사람들의 생활이 오랫동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항구 들머리에 자리했던 약속다방은 조선소 직원과 고깃배 선원들이 즐겨 찾던 공간이었다. 쉬는 날이면 선원들이 찾아와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약속다방은 수년 전 영업을 마쳤다. 현재 그 자리에는 중국식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만남이 다방에서 시작되던 시절
약속다방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약 20년 전이었다. 당시 방어진 시외버스 정류장 부근에 같은 이름의 다방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약속이라는 이름은 과거 다방이 맡았던 사회적 역할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많은 만남이 다방에서 시작됐다. 연인뿐 아니라 친구와 동료도 정해진 날과 시간에 다방으로 향했다. 휴대전화로 도착 여부를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시절, 다방은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는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다리던 사람이 있는 곳, 그 풍경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이름이 약속다방이었다.
동해안 항구에 이어진 약속다방
약속다방이라는 이름은 방어진에만 남아 있던 것이 아니었다. 동해안을 따라 경북 울진 죽변파출소 옆과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뱃머리에서도 같은 이름의 다방이 확인됐다. 항구와 다방, 기다림과 만남이라는 공통된 생활상이 동해안 여러 지역에 이어져 있었던 셈이다.
다만 방어진 약속다방은 더 이상 영업하지 않는다. 같은 이름을 지닌 다방들이 다른 항구에 남아 있는 가운데, 방어진에서는 건물과 주변 거리만이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뱃사람들의 쉼터였던 방어진 다방
약속다방이 영업하던 당시 방어진항 주변에는 여러 다방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었다. 대왕암과 울기등대로 이어지는 방어진 선창, 조선소 정문과 옛 시외버스 종점, 항구 주차장을 지나면 정비된 거리 곳곳에서 다방 간판을 볼 수 있었다.
방어진항은 동해안의 멸치잡이로 알려진 주요 어항이다. 슬도에서 오밀조밀한 해안선을 따라오면 어시장과 과거 회를 썰어 팔던 방파제 입구로 이어진다. 그 길목에 다방 10여 곳이 나란히 영업하며 항구의 독특한 거리 풍경을 만들었다.
추운 날의 항구는 비교적 조용했다. 몇 척의 배가 부두에 묶여 있었고, 다방들은 차가운 바닷바람을 피해 들어온 손님을 맞았다. 시내에서 전통 다방 한 곳을 찾기 어려워진 때에도 방어진에서는 여러 다방이 서로 가까운 거리에서 영업을 계속했다.
항구의 시간에 맞춘 영업
시내의 일부 다방은 오전 10시 30분 이후에 문을 열거나 한낮이 지나 영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방어진 다방의 시간표는 달랐다. 이른 시간부터 움직이는 항구 노동자와 선원들의 생활에 맞춰 오전 8시나 9시면 문을 여는 곳이 많았다.
오징어잡이배와 멸치잡이배 선원들은 출항을 앞두거나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온 뒤 다방을 찾았다.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온 날에도, 다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날에도 다방은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가 됐다. 항구 주변에서 카페보다 다방이 더 익숙하게 자리 잡은 배경에는 이러한 이용층과 생활 리듬이 있었다.
방어진의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출항과 귀항 사이에 머무는 생활 공간이었다.
말보다 익숙한 행동이 오간 곳
약 15~16년 전 겨울 아침, 오전 9시가 지난 약속다방에는 구릿빛 얼굴의 선원이 들어왔다. 종업원은 익숙한 손님을 알아보고 커피 두 잔을 탁자에 놓았다. 두 사람은 많은 말을 나누지 않은 채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오랜 시간 같은 공간을 이용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문과 설명이 길게 필요하지 않았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종업원이 평소 마시던 음료를 준비하고, 손님은 정해진 듯한 자리에 앉아 항구를 바라봤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오가는 장면은 방어진 다방의 일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줬다.
창밖으로 펼쳐진 방어진항
약속다방은 3층 건물의 2층에 있었다. 창가에서는 방어진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항구 곳곳을 채웠고, 파도가 움직일 때마다 배에 달린 전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다방에서 내려다보이던 어판장 일대는 과거 바다였으나 매립을 거쳐 넓은 부두로 바뀌었다. 선착장 곳곳에서는 가자미를 그물에 널어 말리는 모습도 이어졌다. 실내의 손님들은 창밖으로 펼쳐진 선박과 부두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종업원은 손님에게 커피를 권하고 두 잔을 내왔다. 억센 사투리가 섞인 말투가 인상적이었으며, 고향은 중국 하얼빈에서 버스로 네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방어진의 다방 안에는 항구에서 일하는 선원뿐 아니라 타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의 삶도 함께 놓여 있었다.
어선까지 이어졌던 커피 배달
약 10여 년 전 방어진 다방의 주요 영업 방식 가운데 하나는 커피 배달이었다. 거리의 점포뿐 아니라 부두에 정박한 어선까지 음료를 전하던 시절도 있었다. 여러 다방의 입구 간판에는 배달 전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약속다방 역시 같은 간판을 세워 두었다.
다방 배달은 항구의 작업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배를 비우기 어렵거나 출항 준비로 분주한 선원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다방의 영업 범위가 실내에 머물지 않고 부두와 어선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방어진만의 생활상을 드러냈다.
점심이 지나면 채워지던 자리
방어진항을 따라 걷다 보면 거리 곳곳에서 다방을 만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중년 남성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고, 어느새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손님이 들어찼다. 전통 다방이 드물어진 시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 방어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이어졌다.
다방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영업하고, 이른 아침부터 손님을 맞으며, 항구와 어선으로 커피를 배달하던 모습은 방어진 다방 문화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항구를 따라 형성된 다방들은 각자의 간판을 내걸었지만, 모두 뱃사람들의 휴식과 만남을 뒷받침했다.
노래와 함께 떠오른 약속
약속이라는 이름은 1970년 발표된 노래와도 연결됐다. 이필원은 박인희와 함께 뚜아에무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약속을 불렀다. 이 노래에는 서로 만나고, 잊지 않고 살며, 푸르게 살아가고, 슬픔을 잊자는 뜻을 담은 네 가지 약속이 등장한다.
다방의 이름과 노래가 함께 불러낸 것은 사람들이 지킨 약속과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기억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장소였던 다방과 여러 약속을 되새기는 노래는 당시의 만남 문화를 나란히 보여준다.
문을 닫아도 사라지지 않는 장소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지나간 시절의 공간은 더 또렷하게 기억되기도 한다. 다방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항구를 바라봤던 순간은 그곳을 찾았던 이들에게 개인과 지역의 기억으로 남았다.
약속다방은 문을 닫았지만 방어진항 주변에는 여전히 여러 다방이 영업하고 있다. 항구를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라는 역할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조선소 직원과 선원들이 찾고 어선까지 커피를 배달했던 약속다방의 자리는 이제 다른 가게가 대신하고 있다.
담배 연기처럼 흩어질 것 같았던 약속다방의 풍경은 방어진항과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바다를 향한 창, 아침 일찍 문을 열던 다방, 말없이 커피를 나누던 손님들의 모습은 방어진이 품었던 한 시대의 일상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