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 키캡의 탄생

수천 년 전 바위에 새겨진 반구천의 암각화가 키보드 키캡과 인공지능 이미지 필터, 맞춤형 관광 서비스로 다시 태어났다. 울산과학기술원 학생들이 6주 동안 지역 문화유산과 첨단기술을 연결하며 완성한 결과물이다.
2026년 10월 30일 울산과학기술원에서 열린 ‘2026 창의설계축전’에서는 ‘울산 한바퀴 로컬 AI 프로젝트’의 성과가 공개됐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비롯한 첨단기술이 소개된 전시장 한쪽에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현대적인 관광 콘텐츠로 풀어낸 6개 팀의 작품이 자리했다.
전시장에서는 암각화 문양을 담은 키캡과 체험형 상품, 인공지능 이미지 필터, 맞춤형 관광 웹서비스, 스마트 관광 앱, 체험형 웹게임, NFC 기술을 활용한 관광정보 키링 등이 관람객을 맞았다. 오랜 문화유산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공통된 특징이었다.
키보드 위에 오른 암각화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작품 가운데 하나는 반구천의 암각화 문양을 적용한 작은 키보드 키캡이었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현대인이 매일 사용하는 키보드 부품에 담아 문화유산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유적지에서 해설과 함께 감상하던 암각화가 책상 위에서 사용하고 소장할 수 있는 물건으로 바뀐 것이다. 학생들은 암각화를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만나는 문화 콘텐츠로 확장했다.
암각화 문양을 활용한 여러 상품과 함께 프로타주 체험도 소개됐다. 프로타주는 요철이 있는 표면 위에 종이를 놓고 문질러 무늬를 떠내는 미술 기법이다. 관람객은 이 방법으로 암각화 문양을 직접 표현하며 바위그림의 형태와 특징을 손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설명을 듣는 방식과 달리 문양을 직접 떠내는 과정이 더해지면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문화유산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이 마련됐다. 전시장에서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체험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이어졌다.
사진을 암각화 이미지로 변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작품 가운데서는 인공지능 이미지 필터 변환기가 시선을 모았다. 스마트폰 등으로 촬영한 사진을 인공지능 기술로 변환해 반구천의 암각화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표현하는 아이디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진 필터에 울산의 문화유산을 접목해 관광지에서 촬영한 사진을 색다른 형태로 남길 수 있도록 했다. 암각화에 관한 긴 설명이 없어도 변환된 이미지 한 장을 통해 문양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학생들은 문화유산과 디지털 사진을 결합해 관광객의 기록 자체가 울산의 특징을 담은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오래된 바위그림과 익숙한 스마트폰 사진 문화가 하나의 작품 안에서 만난 셈이다.
취향에 맞춘 울산 여행
‘울산, 나의 여행’은 여행자의 취향과 유형을 토대로 울산 관광코스를 제안하는 맞춤형 관광 웹서비스다. 여행을 준비할 때 생기는 방문 순서와 목적지 선택의 고민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로 제작됐다.
자연 풍경과 문화유산, 사진 촬영 장소, 체험활동 등 여행자가 선호하는 요소는 서로 다르다. 학생들은 같은 울산을 방문하더라도 원하는 여행의 모습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용자에게 맞는 관광정보와 이동 코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반구천의 암각화를 울산 여행의 한 지점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관심사와 연결된 여행 과정 속에 배치하려는 시도였다. 관광객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목적지를 찾고 울산의 여러 자원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밖에도 스마트 관광 앱과 체험형 웹게임, NFC 기술을 적용한 관광정보 키링이 전시됐다. 관광객이 작은 키링을 활용해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은 여행 현장에서의 정보 이용 편의를 고려한 결과물이었다.
여섯 팀이 제시한 관광 아이디어
전시장에는 모두 6개 팀의 작품이 펼쳐졌다. 학생들은 결과물의 개발 취지와 사용 방법을 설명했고, 일부 작품은 관람객이 현장에서 직접 기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운영됐다.
키캡과 키링처럼 손에 잡히는 물건부터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변환기와 관광 웹서비스까지 결과물의 형태는 다양했다. 각 작품에는 울산 관광을 더욱 흥미롭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검토한 문제와 해결 방식이 담겼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울산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 반구천의 암각화를 방문한 경험도 없었다. 학생들은 울산을 처음 접하는 관광객의 관점에서 필요한 정보와 체험 요소를 살폈다.
지역 주민에게 익숙한 관광자원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다. 학생들은 이러한 차이를 바탕으로 관광객의 눈높이에서 이동 동선과 정보 접근성, 체험 콘텐츠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했다.
현장에서 시작된 6주간의 과정
프로젝트는 2026년 9월 18일 킥오프 워크숍으로 시작됐다. 학생들은 암각화 전문가 장석호 박사의 특강을 통해 반구천의 암각화가 지닌 역사와 문화유산적 가치를 배웠다.
이후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학생들은 화면과 책을 통해 접했던 바위그림과 글을 현장에서 살펴보고 주변 자연환경도 함께 둘러봤다. 문화유산이 자리한 공간과 관광객의 이동 과정을 직접 확인하는 일정이었다.
현장에서는 관광두레 주민사업체 희품씨 박민량 대표와 함께 암각화 커스텀 글라스 체험도 진행됐다. 학생들은 지역 문화유산의 문양이 실제 관광상품과 체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현장 방문 뒤에는 관광두레 PD를 비롯한 지역 전문가들의 멘토링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탐방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를 토대로 관광객의 이동 경로와 정보 접근 방식, 체험 콘텐츠의 적용 가능성을 살폈다. 아이디어 구상과 기술 적용, 결과물 제작을 거쳐 6주 동안 작품을 완성했다.
현장에서 확인한 불편과 호기심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구체화됐다. 교실에서 익힌 기술을 실제 지역 문제와 연결했다는 점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대학 기술과 지역 경험의 결합
‘울산 한바퀴 로컬 AI 프로젝트’는 울산과학기술원 리더십센터와 관광두레가 함께 추진했다. 울산과학기술원 학생들의 창의적인 발상과 기술 역량에 관광두레의 지역 현장 경험과 주민사업체 네트워크를 결합했다.
학생들은 지역을 직접 탐방하며 관광 현장의 문제를 찾았다. 관광두레는 지역 전문가와 주민사업체를 연결해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현장 상황과 맞닿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프로젝트에서 인공지능은 기술의 복잡함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학생들은 해당 기술이 관광객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이미지 변환과 맞춤형 여행 제안 등 구체적인 이용 방식을 설계했다.
구채은 광역관광두레 PD는 울산과학기술원 학생들과 함께한 6주간의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며, 낯선 지역의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발전시키기 위해 힘쓴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학생들이 제작한 결과물이 전시에 머물지 않고 지역 관광자원과 주민사업체 등 실제 현장에 연결돼 활용되기를 바란다는 기대도 밝혔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작품은 프로젝트 결과물로, 실제 관광 현장에서 활용하려면 추가 검토와 발전 과정이 필요하다.
시민 2천 명이 만난 성과
2026 창의설계축전에는 지역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을 비롯해 학부모와 시민 등 약 2천 명이 방문했다. 행사장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기술 성과가 소개됐다.
그 가운데 반구천의 암각화를 활용한 프로젝트는 첨단기술과 지역 문화유산을 한 공간에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수천 년 전의 문양이 키캡과 체험 상품, 인공지능 필터, 관광 서비스로 구현된 모습을 살펴봤다.
학생들은 울산 출신이 아니고 프로젝트 전까지 해당 문화유산을 방문한 경험도 없었지만, 현장을 직접 걷고 전문가와 주민사업체를 만나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문화유산을 배우는 과정과 관광객의 불편을 찾는 과정, 기술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하나의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수천 년 문양의 새로운 쓰임
반구천의 암각화 문양은 학생들의 작업을 거쳐 키캡과 관광 앱, 웹게임, 키링, 맞춤형 여행 서비스의 소재가 됐다.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관광객이 사용하고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는 지역의 문화유산을 새로운 세대가 기술과 일상용품을 통해 다루는 과정을 보여줬다. 학생들은 암각화의 가치와 현장 환경을 먼저 배우고, 관광객에게 필요한 기능을 검토한 뒤 각각의 결과물을 제시했다.
수천 년 동안 바위에 남아 있던 그림은 청년들의 손끝에서 일상용품과 디지털 관광 콘텐츠로 확장됐다. 6주간의 프로젝트는 울산의 문화유산과 대학의 기술, 지역 관광 현장의 경험이 연결된 사례로 창의설계축전 관람객들에게 공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