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노동의 시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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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노동의 시간을 걷다

산업수도 울산을 만든 사람들의 기록

울산을 상징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산업수도’다. 그러나 거대한 공장과 조선소, 자동차 생산라인만으로 산업도시의 역사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그 현장에서 일하며 도시의 성장을 이끈 노동자들의 삶과 목소리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울산광역시 북구에 자리한 울산노동역사관1987은 울산 노동의 발자취를 시대별 자료로 보여주는 국내 최초의 노동 중심 역사관이다. 2014년 문을 연 이곳은 조선시대 노동부터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90년대 이후의 노동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역사관 명칭에 포함된 ‘1987’은 그해 7월 현대엔진 노동조합 창립을 시작으로 울산에서 전개된 노동자대투쟁을 가리킨다. 전시 공간에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뿐 아니라 월급봉투와 등사기, 작업복, 유인물처럼 노동자의 일상과 현장 분위기를 보여주는 자료도 함께 놓여 있다.

오토밸리복지센터 4층의 역사관

시설명울산노동역사관1987
위치울산광역시 북구 산업로 1020 오토밸리복지센터 4층
운영시간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정기휴무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시설 문의울산노동역사관1987 052-283-1987

역사관은 오토밸리복지센터 건물 4층에 있다. 건물 입구에는 북구 시설관리공단 간판이 설치돼 있어 방문자는 해당 건물로 들어가 4층으로 이동하면 된다. 이 건물은 현대자동차 노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한 시설이다.

4층에 도착하면 벽면을 채운 울산노동역사지도가 먼저 시선을 끈다. 지도에는 반구대 암각화와 달천철장,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현장이었던 남목고개, 현재의 울산노동역사관까지 울산 곳곳에 남은 노동의 흔적이 정리돼 있다.

지도 옆에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사람과 한복 차림의 어머니, 작업복을 입은 청년 등 여러 노동자의 모습을 표현한 조형물이 자리한다. 뒤쪽 벽면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노동’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모습의 노동자가 한 공간에 배치되면서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역사관의 주제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울산 노동사

상설전시실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둥글게 이어진다.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을 천천히 이동하며 울산 노동의 역사를 순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공간은 중세 노동을 다룬다. 사농공상의 신분 구조를 비롯해 병영에서 일했던 장인, 울산 지역 보부상, 염전에서 소금을 굽던 노동자의 모습을 옛 그림과 자료로 소개한다. 오늘날의 공장 노동에 앞서 지역 사회를 지탱했던 다양한 일의 형태를 보여주는 구간이다.

일제강점기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벽면의 색이 어두워지고 전시 분위기도 무거워진다. 방어진에 들어온 일본 자본에 맞섰던 노동자들의 항일운동과 울산노동조합의 결성 및 강제 해산, 야학 탄압 등이 연표로 정리돼 있다. 당시의 신문 기사와 사진 자료도 함께 전시돼 사건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전시는 노동을 단순히 생계를 위한 행위로만 다루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노동자가 어떤 현실을 마주했고, 어떻게 목소리를 냈는지를 기록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산업도시의 성장과 1987년

굴뚝 모양 조형물을 지나면 1960년대 이후 산업수도로 성장한 울산의 모습이 펼쳐진다. 산업화 과정과 함께 역사관 명칭의 배경이 된 1987년 노동자대투쟁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거리를 가득 메운 노동자들의 대형 사진이 벽면을 채우고, 천장에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이어 붙여 만든 조형물이 걸려 있다. 기록 사진과 실제 현장을 떠올리게 하는 작업복이 한 공간에 놓이면서 당시 노동 현장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색연필과 도화지를 갖춘 체험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를 동반한 관람객도 전시를 본 뒤 그림을 그리며 노동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전시 구역에서는 울산에서 시작된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한 과정을 지도로 보여준다. 그 옆에는 백무산 시인이 1987년 울산 7월 노동투쟁에 부쳐 쓴 시 ‘전진하는 노동전사’가 당시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교과서에서 짧게 접했던 사건을 지도와 사진, 문학 작품으로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외환위기 이후 달라진 노동 현장

반대편 벽면에는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비정규직 문제, 촛불혁명까지 1990년대 이후의 노동 역사가 연표로 이어진다. 산업화와 노동자대투쟁 이후에도 노동을 둘러싼 문제가 계속 변화해 왔다는 점을 시간 순서로 보여준다.

전시 케이스에는 1992년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유인물 등 당시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된 자료가 보관돼 있다. 빛바랜 종이와 인쇄물은 거대한 사건을 설명하는 연표와 달리 당대 사람들의 구체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전시 후반에는 ‘인간은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연구직과 건설노동, 가사노동, 사무직노동 등 여러 직업과 노동도구를 소개하는 벽면이 등장한다. 작은 창 안에는 각각의 노동에 사용되는 실제 도구가 놓여 있다.

이 구역은 노동이 공장이나 생산라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무실, 연구 및 건설 현장 등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린이와 함께 관람한다면 가족이 어떤 도구를 사용해 일하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 기획전

상설전시실에 이어 기획전시실에서는 노동미술 2026 ‘노동의 미래, 아포칼립스’가 열린다. 전시 기간은 2026년 9월 18일부터 11월 14일까지다.

‘아포칼립스’는 흔히 종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전시는 베일을 벗기고 덮개를 연다는 본래 의미도 함께 제시한다. 노동의 미래를 가리고 있던 문제를 드러낸다는 취지다. 전시 포스터에는 불길 사이에서 팔을 들어 올린 로봇이 등장해 인공지능과 자동화 시대의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기획전에는 2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회화와 조각, 영상 작품이 넓은 전시실에 배치돼 있으며, 작품마다 노동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담고 있다. 어둡게 표현된 노동자의 뒷모습과 거친 질감으로 쌓은 기계 이미지, 불꽃을 쥔 손을 형상화한 조각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입구에 비치된 안내물에서는 작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벽면 한쪽에는 관람객들이 남긴 여러 색의 메모지가 붙어 있어 같은 작품을 본 사람들이 노동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살펴볼 수 있다.

도시의 성장을 사람의 역사로 읽는 공간

울산노동역사관1987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다루는 시간의 폭은 넓다. 조선시대 장인과 보부상, 일제강점기 노동자, 산업화 시대의 현장, 1987년 노동자대투쟁, 외환위기 이후의 변화, 미래 노동을 묻는 미술 작품까지 한 동선에서 이어진다.

1970년대 노동자의 월급봉투와 유인물을 찍던 등사기, 지역 기업의 작업복 같은 생활 자료는 역사책의 문장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노동자의 일상을 보여준다. 연표와 지도, 신문 기사, 사진, 실제 도구가 함께 배치돼 있어 울산의 변화를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울산노동역사관1987은 산업수도라는 이름 뒤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땀과 목소리를 기록한 공간이다. 울산의 산업 발전을 시설과 생산량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역사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의미도 뚜렷하다.

상설전시는 노동의 과거를 시대별로 짚고, 기획전은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확산하는 시대의 노동을 미술로 질문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노동이 한 장소에서 연결되면서 관람객은 울산이라는 도시가 어떤 사람들의 일로 만들어졌는지 차분히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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