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선명한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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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보다 선명한 환영

울산시립미술관에서 국제 극사실주의 특별전 ‘가장 완벽한 환영’이 열렸다. 미국과 호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한국에서 활동하는 작가 13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조명한 전시다.

전시 작품은 회화 90점과 조각 9점, 초대형 조각 1점 등 모두 100점이다. 현실을 정교하게 재현하면서도 작품은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극사실주의의 역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환영은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공상이나 환각을 통해 실제처럼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이번 전시는 현실과 닮은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익숙한 사람과 사물,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입구에서 만나는 메신저

전시장 로비에서는 호주 작가 샘 징크스의 대형 작품 ‘메신저’가 관람객을 맞는다. 인체와 날개를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으로, 실제 인물이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피부의 질감과 신체의 굴곡을 세밀하게 구현한 조형성은 극사실주의 조각이 현실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인체와 결합한 날개는 작품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시 제목인 ‘가장 완벽한 환영’의 의미가 입구에서부터 압도적인 크기와 세밀한 표현으로 펼쳐진다.

실재의 전율

제1부 ‘실재의 전율, 피부 너머의 심연’에서는 털 한 올과 땀구멍까지 재현한 인물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멕시코 출신 화가 프리다 칼로와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미국 가수 지미 헨드릭스, 스페인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 살바도르 달리 등 널리 알려진 인물의 얼굴이 극도로 사실적인 형상으로 제시된다.

미국 작가 카즈 히로의 작품은 얼굴 윤곽과 피부의 굴곡뿐 아니라 눈썹과 솜털까지 치밀하게 표현한다. 특히 프리다 칼로의 얼굴에는 잔털까지 재현돼 살아 있는 인물과 마주하는 듯한 생생함을 전한다. 관람객과 작품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에는 누가 누구를 바라보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긴장감도 형성된다.

삶의 시작과 끝

샘 징크스는 인물을 실제보다 작게 표현하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피부의 질감과 주름, 손끝의 형태까지 실제 사람처럼 정교하게 제작된 조각은 크기와 사실성 사이에서 독특한 감각을 만든다.

아기를 품에 안은 할머니를 표현한 ‘여성과 아기’는 삶을 시작하는 아기와 생의 끝자락에 다가선 노인을 하나의 장면에 담는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는 두 인물의 모습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 맞닿는 과정을 조용히 보여준다.

점으로 완성한 얼굴

스페인 작가 파블로 후라도 루이즈는 작은 점을 거듭 찍어 인물을 표현한다. 작품 가까이에서는 수많은 점의 집합이 먼저 보이지만, 거리를 두면 한 사람의 얼굴과 표정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작은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존재를 완성하는 과정은 극사실주의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세부를 관찰할 때와 전체를 바라볼 때 서로 다른 인상을 전한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연필에 담긴 삶과 사랑

이탈리아 작가 디에고 코이는 연필로 인물의 얼굴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눈빛과 표정은 물론 얼굴 위의 얼음 알갱이와 흘러내리는 물, 젖은 머리카락, 눈동자와 입술까지 정교하게 표현했다.

그는 주로 여자친구와 아내의 얼굴을 작품에 담았으며, 남성 인물로는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연필로 구현한 미세한 묘사와 인물의 감정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화면 속 숨은 이야기

미국 작가 마크 데니스의 ‘옛날 옛적에’도 눈길을 끈다. 꽃송이 중앙에 초록색 식물이 자리하고 주변에는 여러 마리의 새가 모여 있는 작품이다. 화면 속 초록색 식물은 ‘마리나’를 상징하며, 작품 전체는 한 편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직전과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멈춰진 사물의 아우라

제2부 ‘존재의 응시, 멈춰진 사물의 아우라’는 사물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그 본질적인 모습을 화면에 붙잡는다. 늘 곁에 있던 익숙한 대상이 세밀한 표현을 거치며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제시한다.

한국 작가 구자승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언뜻 사진으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이지만, 화면을 자세히 살피면 사물의 표면에 축적된 시간과 존재의 의미가 드러난다.

고영훈의 달항아리 작품에서는 양쪽 형태의 미세한 차이와 표면에 남은 균열과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지 않는 모습과 세월의 자국은 달항아리 특유의 아름다움을 한층 깊게 만든다. 현실을 충실히 재현한 화면이 대상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극사실주의의 깊이를 보여준다.

김영성의 작품은 사물과 생명체를 한 화면에 배치해 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대상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놓이면서 익숙한 현실에 균열을 낸다. 관람객은 눈앞의 대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배치 너머에 숨은 의미를 함께 살피게 된다.

왜곡된 진실의 영토

제3부 ‘경계의 확장, 왜곡된 진실의 영토’에서는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축된 세계가 펼쳐진다. 사물과 풍경을 사진처럼 표현하면서도 현실을 비틀거나 다시 구성해 실제보다 더 생생한 가설의 진실로 이끈다.

일본 작가 하시모토 다이스케는 사실주의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질적인 경험을 화면에 담는다. 인체가 비닐이나 투명한 막에 감싸인 듯한 표현을 활용해 현대인의 정체성과 고립감을 보여준다. 익숙한 인체가 투명한 물질과 결합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

호주 작가 샘 리치는 인간과 동물, 자연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작품에 담는다. 우주복 위에 고양이가 앉아 있거나 헬멧 위에 새가 올라간 장면처럼 쉽게 연결되지 않는 대상들을 하나의 화면에 배치한다. 낯선 조합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데 머물지 않는 작가의 발상을 드러낸다.

호주 작가 로빈 일리는 투명한 비닐을 통해 인간의 인식과 편견을 표현한다. 대상이 눈앞에 놓여 있어도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투명한 막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사실적인 인체와 비닐의 대비는 보는 행위와 이해하는 행위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점을 환기한다.

눈에서 생각으로 이어지는 전시

‘가장 완벽한 환영’은 극사실주의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에서 출발해 현실과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사진과 회화를 구별하는 과정, 실제 사람처럼 보이는 조각과 마주하는 순간이 현대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낮춘다.

작품들은 현실을 정교하게 복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연약함과 생명의 순환, 사물에 쌓인 시간, 현대인의 고립, 자연과 기술의 관계가 함께 담겨 있다. 눈앞의 형상을 따라가던 관람은 점차 작품 너머의 의미를 살피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현실을 닮은 작품을 통해 현실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이 이번 특별전의 중심이다. 세밀한 묘사와 낯선 구성이 이어지는 전시장에서는 놀라움과 긴장, 사색이 차분하게 교차한다.

울산시립미술관 위치

전시 장소는 울산시립미술관이며, 위치는 울산광역시 중구 미술관길 7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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