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울산 백양사 산행기

함월산과 백양사, 울산의 천년 고찰을 걷다
초여름의 산들바람이 부는 날, 울산 중구 성안동에 위치한 함월산(해발 200.6m)을 올랐습니다.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백양사와 그 주변 자연을 직접 체험하고자 한 여정이었습니다.
함월산의 역사와 자연
성안동은 옛 성동의 ‘성(城)’과 상안동의 ‘안(安)’을 합친 이름입니다. 함월산은 ‘달을 품었다’는 뜻으로, 울산의 진산으로 오랜 세월 사랑받아 왔습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운동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산자락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해발 200.6m에 불과하지만, 무룡산, 문수산과 함께 울산의 주산으로 꼽히는 산입니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서 초여름의 열기에 땀이 맺혔지만, 완만한 산길을 느긋하게 걸으며 몸과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능선에 올라서자 이끼가 내려앉은 정자가 쉬어가라며 반겼고, 길가에는 흰 마가렛이 진실한 사랑을 상징하듯 피어 있었습니다. 바위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원초적인 기운을 뿜어내며, 자연 앞에서 인간이 오래전부터 경외심을 배워왔음을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굽은 소나무들은 마치 오래된 수행자처럼 보였고, 인근 백양사에서 울려 퍼지는 불경 소리가 그들의 불심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숲의 선명한 초록빛과 피톤치드가 마음을 맑게 해주었고, 대나무숲을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섰습니다.
울산 시가지를 굽어보며
‘태화 복합문화공간 만디’ 찻집에 올라 울산 시가지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손에 닿을 듯 펼쳐진 영남알프스 산맥의 기운이 밀려왔고, 시선을 돌리자 신라 시대 경주의 관문이었던 울산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역사적 현장으로, 역사를 성찰하지 않는 세대는 같은 비극을 반복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산과 바다, 그리고 산업단지가 어우러져 바닷길로 이어지는 풍경은 장엄했습니다. 자연과 산업, 인간의 삶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하는 모습은 울산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천년 고찰 백양사 산책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많은 인파로 붐비는 백양사는 불교 문화의 산실이었습니다. 신라의 고승 백양선사가 창건한 이 천년 고찰은 ‘백양’이란 흰 버드나무를 뜻하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산 팔경 중 하나로 ‘산사송풍(山寺松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울산부사 심원열은 백양사 저녁 종소리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으라”라고 표현했습니다. 백양사는 정교한 단청과 고즈넉한 목조 건축이 어우러진 전통 사찰로, 약 1만 8천㎡의 절터와 7만 8천㎡의 터전을 품고 있습니다. 한때 함월산 자락 대부분이 백양사 땅이었으며, 1970년대 신도시 개발 전까지 울산 시민들의 대표적인 소풍 장소였습니다.
불이문(不二門)은 속세와 불국토의 경계로, 이 문을 지나야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음을 뜻합니다. 옆의 진여문(眞如門)은 변하지 않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사찰 문을 통과하는 것은 인간 내면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내에 들어서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긴 줄이 이어졌고, 원통전 앞에는 중국 선종의 시조 달마대사상이 묵직한 존재감으로 방문객을 맞았습니다. 달마대사는 인간의 청정한 자성을 일깨우는 수행을 강조했으며, 평범한 언어로 진리를 전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원통전 앞에서는 아기 부처에게 물을 끼얹는 관불 의식이 진행 중이었으며, 이는 번뇌와 때 묻은 마음을 씻어내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기도와 같았습니다. 향전은 금단청과 칠보 단청이 어우러져 우아한 미를 자랑했고, 범종각에는 지옥 중생을 위한 범종, 날짐승을 위한 운판, 네발짐승을 위한 법고, 물속 생명을 위한 목어 등 불전사물이 자리해 생명을 향한 자비심을 담고 있었습니다.
원통전은 불교대학 강의 공간으로도 활용되며,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온화한 미소로 세속에서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이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세음보살 곁에는 남순동자와 해동용왕이 함께 자리해 신앙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대웅전은 대웅보전이라 불리며, 화려한 칠보 단청과 전통 가람 양식이 장엄함을 더합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불,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붉은 바탕에 흰 선으로 윤곽을 그린 선묘불화 아미타삼존도가 자리합니다. 대웅보전 앞에는 의상이 지은 ‘법성게’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칠성각은 인간의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칠성을 모신 전각으로 백양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명부전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며, 유심전은 주지 스님의 거처, 희사전은 스님들의 요사채입니다. 108계단을 오르면 산신각이 나오는데, 불교는 민간 신앙을 포용해 산신을 부처를 수호하는 호법신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산신각 뒤편 부도는 팔각 지붕돌을 얹은 타원형 양식으로 조성되었으며, 창건주 부도를 비롯해 아미타 삼존불, 후불탱화, 신중탱화 등 여러 성보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절을 나서며 ‘참 나를 찾는 절’이라는 문구가 오늘 하루를 대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찾은 백양사는 잠시나마 참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사를 내려오는 길, 어느새 여름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꼈습니다.
백양사 위치: 울산광역시 중구 백양로 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