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지킨 외솔의 길

울산 중구 외솔기념관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외솔 최현배 선생의 삶과 업적을 살펴보는 공간이다. 전시 자료를 차례로 따라가면 한글 연구와 교육, 조선어사전 편찬, 교과서 제작에 힘쓴 외솔의 발자취가 한글의 역사와 함께 펼쳐진다.
기념관은 최현배 선생의 고향인 울산에 자리한다. 상설전시실과 어린이 한글 체험 공간을 갖췄으며, 가까운 곳에는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도 보존돼 있다. 전시 관람과 체험, 생가 탐방을 한자리에서 이어갈 수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도 의미 있는 역사·문화 나들이 장소다.
외솔기념관 운영 정보
| 구분 | 내용 |
|---|---|
| 위치 |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12길 15 |
| 운영 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 관람료 | 무료 |
| 주차 | 외솔기념관 앞 전용 주차장 이용 |
관람객은 기념관 앞에 마련된 전용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 무료로 운영되는 전시 공간인 만큼 우리말과 한글의 역사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기념관 주변에는 외솔의 생가와 야외 공간이 이어져 있어 전시실 안팎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한글학자 최현배의 삶
외솔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생 가운데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히로시마로 유학을 떠났고, 귀국해 학생들을 가르친 뒤 교토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최현배 선생은 한글 연구의 스승인 주시경 선생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조선말본을 만들고 한글 교육에 힘썼다. 우리말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 기반을 다지는 데도 공을 들였다.
연희전문학교에 부임한 뒤에는 1926년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국내 활동을 본격화했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조선어사전 편찬 사업을 추진했다. 외솔의 연구와 교육 활동 역시 우리말을 지키려는 이러한 움직임과 맞닿아 있었다.
외솔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민족의 정신과 삶을 이어 주는 기반이었다. 기념관의 연구 자료와 저서, 사진은 그가 한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가갸날과 한글 운동
오늘날 한글날의 옛 이름은 가갸날이다. 1926년 가갸날이 제정됐으며, 외솔은 그해 11월 4일 열린 첫 기념식 이후 가로풀어쓰기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러한 기록에서는 한글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널리 쓰일 방법을 고민했던 외솔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외솔은 항일민족주의운동 단체인 흥업구락부에서도 활동했다. 흥업구락부는 겉으로 종교단체의 모습을 띠었지만 항일운동을 전개한 단체였다. 일제는 치안유지법 위반을 내세워 단체를 해체했고, 회유에 응하지 않은 외솔은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에서 강제로 물러났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외솔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투옥된 그는 광복과 함께 새로운 삶을 맞았으며, 해방 이후에도 높은 자리보다 한글 보급과 교육을 위한 실무를 택했다.
해방 뒤 교과서를 만든 학자
광복 이후 최현배 선생은 편수국장을 6년 동안 맡았다. 이 기간에 한글 보급과 교육을 위해 여러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편찬한 교과서는 40권에 이른다. 학교에서 사용할 교재를 우리말로 마련하는 일은 해방 이후 교육의 기틀을 세우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전시실에서는 외솔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도 살펴볼 수 있다. 큰 스승인 주시경 선생은 한글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인물로 소개된다. 주시경에게서 이어진 우리말 연구와 교육의 흐름은 외솔의 학문과 실천으로 이어졌다.
시인 윤동주 역시 최현배 선생의 제자로 소개된다. 윤동주의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외솔이 세운 출판사에서 발간됐다. 이 같은 관계는 외솔의 활동이 한글 연구에만 한정되지 않고 교육과 출판, 문학의 영역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상설전시실에서 만나는 기록
1층 상설전시실에 들어서면 최현배 선생의 생애와 학문적 업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한글 연구 자료와 저서, 사진이 전시돼 있어 외솔이 걸어온 길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시 공간에는 연구자이자 교육자였던 외솔의 모습과 함께 일제강점기 우리말이 처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관람객들은 조용히 자료를 읽으며 한글 연구가 학문적 성과를 넘어 우리말과 민족문화를 지키는 일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기념관 외부에서 볼 수 있는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귀도 외솔의 한글 사랑을 상징적으로 전한다. 이 문구는 한 음식점에서 사용하던 방명록에 외솔이 남긴 글에서 비롯됐다. 짧고 단단한 표현에는 한글을 삶과 같은 가치로 여겼던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이 한글 체험 공간
1층에는 상설전시실과 함께 어린이를 위한 한글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어린이들은 한글 블록과 한글 카드 만들기 등을 통해 글자의 원리를 놀이처럼 익히고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전시 내용을 읽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으로 글자를 조합하며 한글의 짜임을 이해하도록 구성된 공간이다.
체험실에서는 어린이 프로그램인 외솔 토요 배곧도 운영된다.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진행되며 회차당 참여 인원은 15명이다.
| 프로그램 | 운영 내용 |
|---|---|
| 외솔 토요 배곧 | 매주 토요일 운영 |
| 대상 | 초등학생 |
| 시간 |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
| 인원 | 회차당 어린이 15명 |
2026년 10월 프로그램으로는 한글 쿠키와 약과 모양 디폼블록 만들기가 소개됐다. 달마다 체험 내용이 다르게 구성돼 어린이들이 한글과 전통문화를 친숙하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참가 일정과 신청 운영 여부는 외솔기념관의 공식 안내를 기준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야외광장과 외솔 생가
기념관 2층으로 올라가면 야외광장이 이어지고, 인근에는 최현배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생가가 보존돼 있다. 생가는 전시실에서 확인한 기록을 실제 생활 공간과 연결해 보는 장소다. 관람객들은 소박하게 보존된 공간을 둘러보며 외솔의 어린 시절과 삶의 흔적을 차분히 되짚게 된다.
실내 전시실이 외솔의 학문과 활동을 자료로 보여준다면, 생가는 한 인물이 성장한 환경을 공간으로 전한다. 전시실과 생가를 함께 둘러보면 울산에서 태어난 한 청년이 우리말과 글을 지킨 학자로 성장한 과정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울산에서 만나는 한글의 가치
외솔기념관은 중구 9맛 9경에 포함된 울산 중구의 문화 공간이다. 한글날 행사가 열리는 장소인 동시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생애와 우리말 운동의 역사를 상시 전시하는 교육 현장이기도 하다.
나라를 잃었던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외솔의 삶은 한글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어린이에게는 교과서 밖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 되고, 성인에게는 매일 사용하는 한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외솔기념관의 전시는 한글을 사랑한다는 말이 어떤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연구 자료와 교과서, 사진, 방명록의 글귀, 생가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외솔이 평생 지키려 했던 가치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울산 중구에서 역사와 교육을 함께 살펴볼 장소를 찾는다면, 우리말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선택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