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덕에 새겨진 세 시대

하나의 언덕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생활터와 의례 공간, 매장 공간으로 다르게 쓰였다. 울산대곡박물관의 2026년 제2차 특별기획전 ‘울주 교동리 생활유적으로 보는 언덕 사용법’은 발굴된 유구와 유물을 통해 울주 교동리 언덕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시는 울산대곡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관람객은 청동기시대부터 삼한시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이후까지 이어진 공간의 쓰임을 차례대로 살펴볼 수 있다. 같은 장소라도 그곳에 머문 사람과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전시 전체를 관통한다.
공장 건립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
울주 교동리 생활유적은 서울산나들목 인근에 있다. 공장 건립 과정에서 토기 조각이 발견됐고, 이후 시굴 조사를 거쳐 유적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곳은 울산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청동기시대부터 삼한시대의 취락유적으로, 청동기시대 취락 연구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현재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돼 있다.
조사와 보존은 유구의 분포를 고려해 진행됐다. 유구가 밀집한 언덕 정상부는 보존하고, 상대적으로 유구가 적게 확인된 구역에는 공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공장 건립 구역을 발굴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쳐 남겨진 흔적이 확인됐다. 보존 구역은 발굴 당시의 자리에 남아 있다.
청동기시대 생활 공간
전시의 첫 번째 공간은 ‘언덕, 생활 공간이 되다’이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이 언덕을 삶의 터전으로 사용했던 모습을 집자리와 생활 유물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발굴된 집자리에서는 서로 다른 형태와 내부 구조가 확인됐다. 울산식 집자리로 불리는 네모형 집자리가 가장 많았으며, 충청·전라·경남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 송국리형 집자리도 발견됐다.
집의 형태만 남은 것은 아니다. 토기와 돌칼, 그물추 등은 당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각각의 유물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살펴보면서 청동기시대 주민들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집자리와 생활 도구는 언덕이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사람들이 먹고 일하며 살아간 생활 공간이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삼한시대 환호의 등장
두 번째 공간은 ‘언덕, 환호로 둘러지다’이다. 청동기시대의 생활 공간이 시간이 흐른 뒤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과정을 다룬다.
언덕의 높은 곳에서는 일정한 공간을 둘러싸도록 판 도랑인 환호가 확인됐다. 환호가 청동기시대 집자리 일부를 파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어, 집자리보다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환호의 형태는 지형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며, 기능 역시 시대와 유적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마을의 경계나 방어시설로 이용되기도 하고, 제사 또는 의식을 치르는 공간을 구분하는 시설이 되기도 한다.
교동리 생활유적의 환호 안에서는 집자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생활 공간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보다는 제사나 의식을 위한 공간을 구획한 시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환호에서 나온 토기와 석기 등을 근거로 조성 시기는 삼한시대로 보고 있다.
특히 이 환호는 유적 발굴 당시 울산에서 확인 사례가 드물었던 삼한시대 유구였다. 서로 겹친 집자리와 환호의 흔적은 어떤 시설이 먼저 만들어졌고, 언덕의 쓰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통일신라 이후 매장 공간
세 번째 공간은 ‘언덕, 매장 공간이 되다’이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교동리 언덕이 사람들의 생활과 의례를 위한 장소에서 무덤을 조성하는 매장 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화장무덤 1기와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 45기가 확인됐다. 통일신라시대 화장무덤은 불교문화와 함께 화장이 장례 방식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던 시기의 무덤으로, 화장한 뒤 남은 뼈를 묻은 형태다.
고려시대 이후에 조성된 일부 무덤에서는 관정이 남아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나무관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서로 다른 시기의 무덤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 장례와 매장 방식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삼한시대의 환호,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은 한 언덕에 차례로 쌓인 시간의 기록이다.
영상으로 잇는 언덕의 시간
전시 마지막에는 교동리 언덕의 변화를 압축해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 마련돼 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사람들이 언덕에 머물고 떠난 과정을 한 흐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실에서는 각 시대의 흔적이 분리돼 소개되지만, 마지막 영상에서는 생활 공간에서 환호가 있는 공간으로, 다시 매장 공간으로 바뀐 언덕의 시간이 이어진다. 관람객이 앞서 본 집자리와 유물, 환호와 무덤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구간이다.
전시와 박물관 관람 정보
| 전시명 | 울주 교동리 생활유적으로 보는 언덕 사용법 |
|---|---|
| 구분 | 울산대곡박물관 2026년 제2차 특별기획전 |
| 장소 | 울산대곡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
| 전시 기간 | 2027년 3월 28일까지 예정 |
| 주요 구성 | 청동기시대 생활 공간, 삼한시대 환호,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이후의 매장 공간 |
울산대곡박물관에는 기획전시실 외에도 제1전시실부터 제3전시실과 야외 공간이 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대곡박물관 체험학습 ‘사부작 톡톡 유물놀이터’가 진행되며 예약 방식으로 운영된다.
박물관은 순환버스로 접근할 수 있으며 울산암각화박물관과 연계해 이동할 수 있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울주 교동리 생활유적에 남은 여러 시대의 흔적을 통해 공간의 쓰임과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