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겨울을 채우는 왕서개 이야기

울산 겨울을 채우는 왕서개 이야기
매년 겨울, 울산에서는 새로운 연극 예술 작품이 시민들을 찾아옵니다. 올해 상연된 『왕서개 이야기』는 1930년대 만주와 195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진실을 추적하는 한 남자의 절절한 삶을 그려내며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이 작품은 울산문화관광재단의 '2025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극단 답다'가 무대에 올렸습니다. 연극은 주인공 왕서개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그의 진실을 향한 몸부림과 인간적인 고뇌를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1932년 만주에서 매 사냥을 하며 살아가던 왕서개는 어느 날 관동군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는 비극을 겪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름을 왕겐조로 바꾸고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어느 날 왕겐조는 늘 거래하던 이치고의 집에 물품을 배달하러 가던 중, 이치고의 한 마디에 멈춰 서게 됩니다. "그 궤짝, 오래돼 보이는데." 이 말은 왕겐조로 하여금 21년 동안 묻어두었던 질문을 꺼내게 만들고, 그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21년 전 자신의 마을로 향했던 다섯 명을 찾아 나섭니다.
『왕서개 이야기』는 사회의 주변부에 놓인 인물 왕서개의 삶과 관계를 따라가며, 대단한 사건의 연속보다는 인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시선을 머물게 합니다. 왕서개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로 그려지며, 이를 통해 관객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얼마나 쉽게 타인을 판단하고 이름 붙이며 규정하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연극은 설명적이거나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아 부담 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공연 내내 큰 감정의 파도나 화려한 장면은 없지만, 관람 후 여러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존엄’과 ‘정상’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왕서개의 진실 추구 과정은 복잡한 설명 없이도 관객 스스로 질문하고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일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조용한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관객 각자의 생각이 들어갈 여지를 넉넉히 제공합니다. 크게 웃기거나 울리지 않아도 공연이 끝난 뒤 마음 한켠에 자리 잡는 연극을 찾는다면 『왕서개 이야기』는 꼭 만나볼 만한 작품입니다.
매년 겨울, '극단 답다'의 역사극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울산 연극 예술의 고유한 전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역사극은 절실함과 긴박감을 통해 겨울철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며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앞으로도 울산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공연을 이어갈 '극단 답다'의 후속작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